"XX 아파트 사시죠? 사진 보니까 알겠네요"


수년 전, 블로그 서핑을 하다가 어떤 아파트 주민의 일상글을 보게 되었다. 

봄도 왔으니 집안 대청소도 하고, 봄비가 와서 부침개도 부쳐먹었고, 강아지하고 산책도 다녀왔고, 거실에 화분들을 어떻게 새롭게 배치했는지 등 평범하고 따뜻한 느낌의 일상 기록이었다.


 ※ 내용의 일부는 실화에 기반한 픽션입니다. 


우리집에도 식물 화분이 많으면 공기 정화도 되고 좋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댓글란을 보고 있는데, 이때 나는 이런 일상 블로그 댓글란에서 예전에는 본 적 없는 느낌의 댓글을 보고 오싹함을 느꼈다.


댓글을 쓴 사람의 닉네임은 SNS에서 저격용으로 어제 판 계정마냥 이상한 영어와 숫자 조합으로 되어 있었고, 댓글 내용은 이러했다.


"올려주신 사진들을 보니 반갑습니다. 저도 그 아파트 살거든요. 구조를 보니까 저희 집이랑 똑같네요."


여기까지는 그냥 같은 시공사에서 지은 아파트에 사나보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댓글의 다음 내용은 좀 더 오싹했다.


"창밖을 보니까 대충 위치를 알겠네요. 지금 사시는 동이 전경이 좋죠?"


대충 위치를 알겠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어, 저랑 같은 아파트 사시는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정도로 끝날테고, 그 정도만 해도, 약간 오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충 위치를 알겠다?


다음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XX시 XX 아파트에 사시는 거 맞으시죠? 저도 이웃인데 한번 만나서 차 한잔 하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일상 포스팅 감사드려요. 또 방문하겠습니다."


영 기분이 찝찝해서 댓글 쓴 사람의 프로필을 클릭해 블로그에 들어가봤더니, 정작 그 블로그에는 아무 글도 올라와 있지 않은 것이었다. 자기 소개글도 한 줄 없고, 방명록도 텅 비어 있었다. 물론 누구나 블로그를 운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짜고짜 차 한잔 하자고 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야지 생각하는데, 왠걸,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일상 블로거의 블로그에 들어가봤더니 어느새 그 이상한 댓글에 블로거의 대댓글이 달려 있었다.


"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제가 아기를 키우고 있어서 자주 외출을 못합니다. 그래도 말씀 감사드려요."


내가 보기에는 너무너무 친절한 댓글이었다. 물론 그냥 말투만 보자면 방문자의 댓글도 친절하기는 매한가지겠지만, 내용을 보고도 상냥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소한 블로거가 어느 지역,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밝히고 안 밝히고는 본인 마음인데, 그냥 마음대로 까발려 버리지 않았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나같은 사람들의 피해망상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놀라운 사실은, 나 역시 내 피해망상이길, 이런 찝찝하고 불쾌한 느낌, 위험 시그널이 그냥 단순히 나의 과대망상이길 바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실제로 그와 관련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인간의 본능은 당연히 생존 확률을 높이도록 설계되어 있고, 어떠한 위험 신호든 감지하게 되면 조심하게 그쪽을 예의 주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말이다.


내가 이 일에 대해 대학 동기한테 이야기하자, 친구는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글쎄, 우리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 하지만 본인 블로그에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일상의 상세한 부분까지, 그것도 자신이 사는 집 내부 사진까지 공유하고 있는 사람과 사전에 어떤 교류도 없었으면서, 바로 만나고 싶다? 난 그게 그렇게 평범한 행동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네."


친구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던 나는, 그 블로거를 이웃 목록에 추가하고, 며칠 후 업데이트 알림이 떴길래 다시 방문해 보았다.


이번 이야기는 봄맞이 옷장 정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겨울 옷을 다 세탁해서 널어 말렸고, 드라이클리닝할 것들은 세탁소에 맡겼는데 아직 찾아오지는 못했고, 있는 겨울 옷들은 다 접어서 리빙박스에 넣고, 리빙박스에 있던 봄 옷들은 햇빛에 살균한 다음 옷장에 정리해 넣었다는 이야기 등등. 그리고 점심 때 디저트로 먹었다는 과일 케익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보슬비가 왔지만 잠깐 강아지 산책을 시켰다고 했는데, 강아지에게 노란 비옷을 입힌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


그리고 첫번째 댓글로 이런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저번에 블로거가 사는 아파트 위치를 제멋대로 까발린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케익이 맛있어 보이네요. 저도 그 케익 좋아하는데, 다음에 한조각 사다드려도 될까요?"


나는 기가 차서 내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이미 아기 엄마가 만나고 싶지 않다고, 아기 보느라 바쁘다고 이야기했는데, 대체 이게 뭔가?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여기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일상 블로거는 이제 그 사람을 무시하기로 했는지, 그 댓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댓글에만 상냥하게 답장을 했는데, 여기서 그 사람으로부터 역사도 유구한 '나를 무시했다' 류의 발작이 터져나온 것이었다.


그가 블로거가 자신만 무시하고 차별한다고 비난하는 댓글을 올리자, 제 3의 블로거가 점잖게 답장을 달았다. 그 사람도 일상 블로거였는데, 남자였다.


"선생님, 제가 자세한 연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누군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선생님께서도 그냥 관심을 접으면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번에도 무슨 아파트 살지 않냐며 댓글을 다셨던데, 그렇게 누가 사는 곳을 이야기해버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기분이 좀 상하셨더라도, 그냥 그 정도로 그만두세요."


이 댓글에 대해 그 '나를 무시했다' 발작을 일으킨 사람이 쓴 상당히 감정적이고 이상한 뉘앙스의 답장 때문에, 순식간에 이 일은 좀 더 많은 블로거들에게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그 내용은 추잡스럽게도 이러했다.


"당신은 또 누굽니까? 저는 블로거님한테 말을 걸고 있는데, 왜 건방지게 끼어드시는 거죠? 뭐 둘이 무슨 사이라도 됩니까? "


이번에는 남자 블로거가 엄청 화가 났다. 자기도 아기를 키우고 있는 유부남이라고, 아내도 블로그를 보는데 어떻게 이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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